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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선 역: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루이스 세뿔베다)

글쓴이 : 최고관리자

등록일 : 2021-06-08 10:35:27

조회수 : 1,08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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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미선 역: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루이스 세뿔베다), 열린책들, 2007.3.

출판사 서평

상식과 장르의 규칙을 파괴한 블랙 유머의 진수, 루이스 세풀베다의 최신작

국내에도 많은 팬을 가지고 있는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최신작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가 권미선의 번역으로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조니 소사의 발라드』의 작가 마리오 델가도 아파라인과 공동 집필한 이 소설에서 세풀베다는 장르의 규칙은 물론, 우리의 상식과 관념을 철저히 파괴하는 풍자와 해학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동안 소외되고 억압받는 이들의 이야기를 소설이라는 장르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여 간결하고도 인상 깊게 전달한다는 평을 들어 왔던 세풀베다가 이번 작품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사뭇 충격적이다. 동갑내기 우루과이 작가 델가도 아파라인과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완성한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의 설정에서부터 책의 체제, 표지의 작가 소개와 작품 설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뿐이다.
책의 서문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양심 불량인 작가 둘이서 쿵짝쿵짝 하더니, 아무 이유도 없이 세상에 내놓은> 책인 셈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뻔뻔하고도 능청스럽게 풀어 놓는 <세상 끝> 사람들의 이야기엔 세풀베다가 지속적으로 그려 왔던 외면받고 소외된 인간의 모습들이 녹아들어 있다. 그들이 벌이는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사건들을 쫓아가노라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지만, 그러는 동안 독자들은 은연중에 웃음이 <처절하고 절박한 세상에서 사람들을 구해 주는 나무판자>라는 세풀베다의 말을 실감하게 된다.

아파라인과 나는 다른 것들을 풍자하기 위해, 동시대를 보기 위해 그러한 전통에서 출발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유머가 풍랑에서 목숨을 구해 주는 나무판자와도 같습니다. 유머는 희망을 갖고 전복을 꾀하는 방법이지요. 우리는 진지하고 심각한 작가의 이미지에서 도망쳤습니다. 요즘 세상은 아주 엄숙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일이지요. ―「엘 문도」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는 말 그대로 <최악의 스토리>이다. 줄거리도 앞뒤가 맞지 않고 뒤죽박죽인 데다 인물들의 행동은 물론 모든 설정들이 황당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낯익은 이름들은 오히려 혼란만 더해 줄 뿐이다. <하이데거>는 부두 부랑자가 기르는 개 이름이고, 프랑크 시나트라(본문에서는 프란시스코)는 돈 떼 먹고 도망치는 한량의 친구이며, 제목의 그림 형제조차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 동화 작가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
우연히 세풀베다가 파타고니아의 한 신문에서 아벨과 카인 그림에 대한 짤막한 기사를 보게 된 것이 소설의 시작이었다.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무조건 관객들의 야유를 받으며 쫓겨 내려갔다고 하는 그 쌍둥이 파야도르가 우루과이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세풀베다는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우루과이 작가 델가도 아파라인에게 그들에 대한 정보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고, 그렇게 해서 두 작가가 서로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를 완성하게 되었다.
소설은 칠레의 토르티타스에 있는 세히스문도 라미로 폰 클라치 교수와 우루과이의 모스키토스에 있는 오르손 C. 카스테야노스 교수가 서신 교환을 통해 그림 형제의 일생을 추적해 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편지는 점차 애초의 목적에서 벗어나 주변의 소외되고 외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지를 뻗어 나간다.
마약을 싣고 가던 상선이 난파되면서 고래와 펭귄, 바다코끼리 등 온갖 동물들이 약에 취해 질퍽한 짝짓기에 열을 올리는 남극의 바다, 도착하는 우편물마다 모두 쓰레기통 속으로 집어던지는 우체국장, 팔, 다리, 엉덩이를 잃어 가면서도 빙하와 음탕하고도 위협적인 동물들을 헤치고 편지를 전달하는 데 여념이 없는 우편배달부, 회복 불가능한 우울증에 걸려 우편배달부를 바다에 집어 던지는 것을 유일한 낙으로 삼는 선장, 본능에 따라 행동하며 좌충우돌하는 <털북숭이 깜둥이 여자 난쟁이>와 가우초들.....
머나먼 파타고니아의 황당하고 유머러스한 사건들이 거침없이 펼쳐진다. 게다가 여기에 <서간체 전기의 거장>이라는 주석자가 썼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서문과 주석이 첨가된다. 편집자가 번역가들의 항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달아 줬다고 하는 그 주석의 내용은 더욱 황당하다.
이처럼 모든 이야기가 어떻게 보면 은유적이고 암시적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아무런 뜻도 담고 있지 않은, 그냥 한바탕 웃고 말자는 식이라 독자는 줄거리를 따라가다 중간 중간 멈추어 서서 작가의 의도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세풀베다의 작품들은, 칠레가 안고 있는 과거 청산 문제와 환경·생태 문제, 인류애 등 무거운 주제를 다루어 왔으며, 무엇보다 <공식적인 역사 이면에 숨겨진 진짜 주인공들의 진정한 역사는 작가가 써야 한다>는 작가의 사회적 기능을 간과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해 왔다. 그리고 칠레와 유사한 과거를 안고 있는 델가도 아파라인의 작품들 역시 이와 유사한 문제의식을 보여 주었다.
『그림 형제 최악의 스토리』에서 두 사람은 작가연하는 진지한 태도를 벗어던지고 걸쭉하고도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고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 모두의 현실을 그려낸다. 그 모든 설정이 아프고 쓰디쓴 유머로 전개되어 있지만 그 유머란 <희망을 갖고 전복을 꾀하는 방법>으로서 작가들이 선택한 유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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